AI가 초안을 빨리 쓸수록 먼저 확인해야 할 것
AI가 초안을 빠르게 만들어줄수록, 사람에게 더 중요해지는 일은 내가 하려던 말을 먼저 설명하고 붙잡는 일입니다.
안녕하세요? 생산적생산자입니다.
요즘은 글쓰기의 첫 장벽이 많이 낮아졌습니다. 메모 몇 줄, 자료 몇 개, 떠오른 생각 하나만 있어도 AI는 금방 초안을 만들어줍니다. 예전 같으면 한참을 붙잡고 있어야 했던 글의 구조도 몇 분 안에 나오고, 제목 후보와 예시까지 한 번에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초안이 빨리 나올수록 더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문장은 매끄럽고 구조도 그럴듯한데, 막상 읽고 나면 내가 하려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흐려질 때가 있습니다. AI가 글을 못 써서 생기는 문제라기보다, 내가 충분히 설명하기 전에 초안이 먼저 도착하면서 생기는 문제에 가깝습니다.
초안이 생겼다고 해서 곧바로 글이 내 것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AI가 만든 문장이 읽기 좋더라도, 그 안에 내가 이 주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무엇을 다르게 말하고 싶은지, 어떤 흐름으로 독자를 데려가고 싶은지가 들어 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초안은 생겼는데, 정작 내가 하려던 말은 더 흐려지는 순간이 생깁니다.
초안 전에 대화가 부족했습니다
좋은 회의는 결론으로 바로 뛰지 않습니다. 먼저 지금 무엇이 막혀 있는지, 무엇을 결정해야 하는지, 어떤 결과가 필요한지 맞춥니다. 그다음 가능한 방향을 제안하고, 서로의 이해를 조정합니다. 그 과정이 좋으면 결론도 좋아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AI와 글을 쓸 때도 비슷합니다. 우리는 종종 AI에게 바로 “이걸로 뉴스레터 초안 써줘”, “이 자료를 바탕으로 글로 정리해줘”, “이 메모들을 보고 콘텐츠로 만들어줘”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AI는 글을 만들어줍니다. 하지만 그 전에 사람이 해야 할 말이 빠져 있을 때가 많습니다.
내가 해결하려는 문제는 무엇인지, 이 글을 통해 독자가 무엇을 이해하길 원하는지, 나는 이 주제를 어떤 흐름으로 풀고 싶은지 먼저 말해야 합니다. 피하고 싶은 흔한 결론이 있다면 그것도 알려줘야 합니다. 내가 이미 생각해본 지점이 있다면, 그 지점도 함께 꺼내야 합니다. 이 대화가 부족하면 AI는 무난한 초안을 만들지만, 그 초안은 내가 끌고 가려던 흐름과 조금씩 어긋날 수 있습니다. 글쓰기의 어려움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초안이 나오기 전의 대화로 옮겨간 셈입니다.
사람이 직접 할 일은 글쓰기 앞쪽으로 이동했습니다
AI 글쓰기에서 사람이 직접 해야 할 일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글쓰기의 앞쪽으로 옮겨갔습니다. 초안은 쉽게 나오고, 문장도 쉽게 다듬어지며, 구조도 금방 제안받을 수 있습니다. 이제 더 중요한 일은 내가 하려던 말을 AI에게 설명하고, 그 설명을 기준으로 초안을 판단하는 일입니다.
프롬프트 한 줄을 잘 쓰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AI에게 일을 잘 맡긴다는 것은 내가 하려는 일의 흐름을 설명하는 일입니다. 이 과정은 글쓰기 바깥에 있는 준비 작업이 아니라, 이제 글쓰기의 일부에 가깝습니다.
AI가 벗어나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장치
여기서 저는 하네스라는 말을 떠올립니다. 하네스는 원래 몸이나 장비가 엉뚱한 곳으로 벗어나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장치입니다. AI와 일할 때도 비슷한 장치가 필요합니다. 내가 원하는 흐름, 피해야 할 길, 확인해야 할 기준을 미리 정해두면 AI가 그 안에서 더 안정적으로 움직입니다.
글쓰기에서 하네스는 거창한 기술 장치가 아닙니다. 이 글이 해결하려는 문제, 독자가 겪는 장면, 내가 원하는 결론의 방향, 피하고 싶은 흔한 주장, 참고해야 할 내 생각이나 메모, 문체와 표현 기준이 모두 하네스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기준이 없으면 AI는 넓은 가능성 속에서 그럴듯한 글을 만듭니다. 결과물이 매끄러워도 내 생각과 맞는지는 다시 확인해야 합니다.
반대로 기준이 있으면 초안의 출발점이 달라집니다. “좀 더 좋게 해줘”가 아니라 “문제 장면은 살아 있는데 결론이 너무 일반적이다”, “이 부분은 도구 소개처럼 보이니 독자가 겪는 상황으로 다시 풀어달라”, “내가 말하려던 흐름은 이쪽이니 그쪽으로 더 밀어달라”는 식의 대화가 가능해집니다. 좋은 초안은 우연히 나오는 것이 아니라, 초안 전에 나눈 대화와 기준에서 나옵니다.
내가 쌓아둔 메모가 대화의 기준이 됩니다
저에게는 제텔카스텐이 이 역할을 해줍니다. 어떤 주제에 대해 예전에 남겨둔 생각, 다른 메모와의 연결, 시간이 지나며 바뀐 판단을 다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AI에게 바로 초안을 맡기기 전에 이런 메모를 다시 보면, 단순히 자료를 더 넣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 주제를 어떻게 끌고 가고 싶은지 다시 설명할 수 있게 됩니다.
제텔카스텐을 AI에게 넘길 자료 창고처럼만 쓰면 아깝습니다. 제게 더 중요한 역할은, 내가 어떤 생각을 해왔는지 다시 확인하게 해준다는 데 있습니다. 예전에 쓴 메모를 다시 읽으면 “이 생각은 아직 유효하다”, “이 부분은 지금은 다르게 본다”, “이 문장은 더 뾰족하게 말할 수 있다”, “이 방향은 피하고 싶다” 같은 판단이 생깁니다.
그 판단이 생기면 AI에게 주는 맥락도 달라집니다. 그냥 “이 자료로 글 써줘”가 아니라 “나는 이 주제를 이렇게 봐왔고, 지금은 이쪽으로 더 밀어보고 싶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때 AI는 단순히 정보를 요약하는 역할을 넘어서, 내가 하려던 말을 더 분명하게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바로 초안을 맡기기 전에 할 수 있는 일
AI에게 글을 맡기기 전에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먼저 내가 해결하려는 문제와 원하는 결과를 한 문단으로 설명합니다. “AI가 초안은 잘 써주는데, 막상 읽어보면 내가 하려던 말이 흐려지는 문제가 있다. 이 글을 읽은 사람이 AI에게 바로 초안을 시키기 전에, 자기가 하려던 말을 먼저 설명해보게 만들고 싶다”라고 말하는 식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AI는 단순히 AI 글쓰기라는 주제가 아니라, 실제 문제 장면과 독자에게 남길 변화를 함께 붙잡고 움직일 수 있습니다.
저는 이 과정을 일부러 조금 더 세게 만들 때가 있습니다. 바로 초안을 써달라고 하기 전에, AI에게 먼저 저를 질문하게 하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이 글을 쓰기 전에 내가 더 분명히 말해야 할 것과 독자가 헷갈릴 만한 지점을 먼저 물어봐줘”라고 요청합니다. Matt Pocock의 grill me 스킬도 비슷한 접근입니다. 이런 방식은 질문의 깊이를 만들어주고, 제텔카스텐은 그 질문에 답할 재료와 기준을 쌓아줍니다.
그다음에는 내가 생각하는 방향과 피하고 싶은 방향을 함께 알려줍니다. “나는 이 문제를 초안 부족이 아니라 초안 전 대화 부족으로 보고 싶다. 다만 단순한 도구 소개나 AI를 쓰면 생산성이 오른다는 뻔한 결론으로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정답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싶은지 AI가 알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초안이 나온 뒤 확인할 기준을 정합니다. 내가 하려던 말이 살아 있는지, 독자가 겪는 문제가 선명한지, 내 생각의 흐름이 보이는지, 너무 평균적인 글로 흐르지 않았는지 확인합니다. 이 말은 “어차피 AI 초안은 별로니까 나중에 고치자”는 뜻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좋은 초안을 받고 싶다면, 초안 전에 대화가 좋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글쓰기는 내 생각을 설명하는 일입니다
AI가 글을 써준다고 해서 사람의 역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의 역할은 오히려 더 앞쪽으로 이동합니다. 이제 우리는 모든 문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쓰는 사람이라기보다, AI가 쓰기 전에 무엇을 원하는지 설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 설명을 잘하기 위해서는 내가 평소에 무엇을 보고, 무엇을 다르게 느끼고, 어떤 생각을 반복해서 남겨왔는지 알아야 합니다. 저에게는 그 기반이 제텔카스텐입니다. 제텔카스텐에 쌓인 메모는 단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지금 AI와 더 좋은 대화를 나누기 위한 재료가 됩니다.
AI는 그 설명을 바탕으로 초안을 만들고, 구조를 제안하고, 표현을 다듬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하려던 말까지 대신 붙잡아주지는 못합니다. AI가 글을 써줄수록 우리는 더 좋은 초안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더 좋은 대화를 시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번 주에 AI로 글을 하나 써볼 일이 있다면, 바로 초안을 요청하기 전에 한 문단만 먼저 적어보면 좋겠습니다. 내가 다루려는 문제는 무엇인지, 독자가 읽고 나서 무엇을 다르게 보았으면 하는지, 이 글이 어떤 뻔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았으면 하는지 적어보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AI가 쓰기 전에 내가 하려던 말을 먼저 설명해보는 일입니다.
그다음에는 AI에게 “바로 쓰지 말고, 먼저 내가 더 분명히 말해야 할 것을 물어봐줘”라고 요청해보면 좋겠습니다. 좋은 초안은 빠른 명령에서만 나오지 않습니다. 내가 하려던 말을 먼저 설명하는 대화에서 나옵니다.
고맙습니다.
생산적생산자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