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라이트만 남기면 왜 내 생각은 사라질까

하이라이트는 책의 문장을 남깁니다. 하지만 독서메모는 그 문장을 읽던 당시의 질문, 해석, 감각, 연결 방향을 다시 불러오게 합니다.

하이라이트만 남기면 왜 내 생각은 사라질까

안녕하세요? 생산적생산자입니다.

최근에 예전에 처리하지 못했던 문헌메모를 다시 열어봤습니다. 책 내용은 생각보다 많이 희미해져 있었습니다. 분명히 읽었고, 밑줄도 그었고, 그때는 꽤 중요하다고 느꼈던 문장들인데도 막상 다시 보니 왜 멈췄는지 바로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이라이트 아래에 붙여둔 제 메모를 읽자 흐릿하던 감각이 조금씩 돌아왔습니다. 그때 제가 무엇에 걸렸는지, 어떤 질문을 하고 있었는지, 왜 그 문장을 제 삶과 연결했는지가 다시 보였습니다.

그 순간 다시 느꼈습니다. 독서메모는 책 내용을 오래 기억하기 위한 장치만은 아닙니다. 그 책을 읽던 당시의 내 관점을 남기는 장치에 더 가깝습니다.

문장은 남지만, 읽던 나는 쉽게 사라집니다

하이라이트는 유용합니다. 다시 읽고 싶은 문장을 빠르게 찾을 수 있고, 책에서 중요하다고 느낀 부분을 표시해둘 수 있습니다. 문제는 하이라이트만으로는 그 문장에 멈춘 이유가 잘 남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책의 문장은 남습니다. 하지만 그때 내가 무엇을 고민하고 있었는지, 그 문장이 내 경험의 어느 부분과 닿았는지, 그 문장을 보고 어떤 질문이 생겼는지는 쉽게 사라집니다. 시간이 지난 뒤 하이라이트를 다시 보면 좋은 문장이네, 정도에서 멈추는 경우가 많습니다.

독서메모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갑니다. 책을 요약하는 일이 아니라, 책을 읽던 내가 무엇에 걸렸는지 남기는 일입니다. 어떤 문장이 나에게 들어왔고, 그 문장이 왜 지금의 내 문제와 연결됐는지, 거기서 어떤 생각이 생겼는지를 적어두는 일입니다.

한 줄 메모는 나중의 나를 다시 데려옵니다

Tiago Forte의 The 4 Notetaking Styles를 읽을 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 글에는 지식관리 스타일을 건축가, 정원사, 사서, 학생으로 나누는 설명이 나옵니다. 그중 정원사에 대한 설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정원사는 완성된 구조를 먼저 세우기보다, 여러 아이디어와 가능성을 동시에 키워가는 사람에 가깝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문장 아래에 저는 제 방식에 대한 메모를 붙여두었습니다. 나는 처음부터 목차를 세워 채우는 사람이라기보다, 여러 생각을 동시에 키우고 연결하면서 나중에 구조를 발견하는 쪽에 가깝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나중에 다시 읽어보니, 제가 기억한 것은 글의 분류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그 문장을 통해 제 일하는 방식을 설명할 언어를 얻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독서메모는 외부의 개념을 가져와서 제 방식에 이름을 붙여준 흔적이었습니다.

이 차이가 작아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꽤 큽니다. 하이라이트만 남겼다면 저는 정원사라는 분류를 다시 확인했을 겁니다. 하지만 제 메모가 있었기 때문에, 그 분류가 왜 제 메모 방식과 닿았는지까지 다시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책 내용보다 오래 남는 것은 내가 걸린 이유입니다

《안나 카레니나》 문헌메모에서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독서모임 질문 중에 오블론스키와 레빈 중 어느 쪽의 삶에 더 가까운지 묻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저는 레빈 쪽에 더 가깝다고 적었습니다. 레빈의 농촌 노동 자체보다, 그가 느끼고 생각한 것을 붙잡아 글과 사유로 이어가는 태도가 더 인상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답변을 다시 읽으니 소설의 줄거리보다 제가 그 인물을 통해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가 먼저 돌아왔습니다. 저는 레빈이라는 인물을 통해 제 삶의 방식, 기록에 대한 끌림, 콘텐츠를 만들고 운영하려는 방향을 다시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소설을 읽는 일도 결국 나를 읽는 일이 될 때가 있습니다. 인물의 선택과 갈등을 보면서 내가 어떤 삶에 끌리는지, 어떤 태도를 경계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살고 싶은지를 더 선명하게 알게 됩니다.

그래서 문학 메모도 줄거리 요약으로 끝나면 아깝습니다. 줄거리는 다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장면을 읽던 내가 왜 흔들렸는지, 왜 어떤 인물에게 끌렸는지, 왜 어떤 선택을 조심해야 한다고 느꼈는지는 그때 남겨두지 않으면 쉽게 사라집니다.

독서메모는 요약보다 연결에 가깝습니다

독서메모를 책 내용을 잊지 않기 위한 일로만 보면 부담이 커집니다. 모든 내용을 정리해야 할 것 같고, 빠뜨리면 안 될 것 같고, 책을 제대로 요약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다시 확인한 독서메모의 가치는 조금 다릅니다. 독서메모는 책 내용을 빈틈없이 보관하는 일이 아닙니다. 책을 읽던 나의 관점, 그때의 질문, 해석, 감각, 연결 방향을 남기는 일입니다.

그렇게 보면 메모의 기준도 달라집니다. 모든 문장에 메모를 붙일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나에게 걸린 문장 아래에는 한 줄을 붙여볼 수 있습니다.

이 문장이 왜 지금 나에게 걸렸는가?

답은 길지 않아도 됩니다. 내가 지금 이 문제를 고민하고 있어서, 내가 이미 이런 방식으로 일하고 있어서, 이 표현이 내 상태를 설명해줘서, 이걸 글이나 수업에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이 정도의 한 줄이면 충분할 때가 많습니다.

그 한 줄이 있어야 나중의 내가 책 내용이 아니라, 그 책을 읽던 나의 관점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하이라이트는 문장을 남깁니다. 좋은 독서메모는 그 문장을 읽던 나를 남깁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콘텐츠가 되는 것은 대개 책의 문장 자체보다, 그 문장을 통과하며 생긴 나의 관점입니다.

이번 주에 책이나 글을 읽다가 멈춘 문장이 있다면, 그 아래에 한 줄만 붙여봐도 좋겠습니다. 왜 지금 나에게 걸렸는지 적어두는 겁니다. 그 질문 하나가 나중의 나를 다시 그 자리로 데려올 수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생산적생산자 드림